12화. 페르본, 새로운 단계

12화. 페르본, 새로운 단계
유기산 검사 결과지가 나왔다. 처음 받아 들었을 때 한참 들여다보았다. 아이 몸의 대사 지도가 종이 한 장에 펼쳐져 있었다. 수십 개의 수치들이 참고 범위 안팎을 오가는 가운데, 몇 가지가 눈에 걸렸다. 미토콘드리아 기능과 관련된 지표들이었다. 에너지 대사의 중간 산물들이 비정상적으로 높거나 낮았다. 아이의 세포가 음식을 에너지로 바꾸는 과정이 원활하지 않다는 신호였다. 검사지를 내려놓으며 나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예상이 확인으로 바뀌는 순간의 무게는 달랐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발전소다. 우리가 먹은 음식을 태워 에너지로 전환하는 곳. 그 발전소가 제대로 돌지 않으면 아이는 충분히 먹어도 피로하고, 뇌도 근육도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발달이 더딘 아이들 중 상당수에서 이런 패턴이 나타난다는 것을 문헌에서 읽었지만 — 내 아이의 검사지에서 직접 그 숫자들을 확인하는 것은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가슴이 조였다. 그러나 동시에, 이제 알았으니 도울 수 있다는 생각도 올라왔다. 문제를 확인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그것이 의사로서 내가 늘 환자에게 하는 말이었고, 지금은 그 말을 나 자신에게 해야 했다.
페르본. 류코보린이라는 성분명으로 불리는 이 약은, 엽산 유도체로서 뇌의 엽산 수송을 도와 신경 발달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당시에도 페르본의 효과에 관한 논문들은 이미 나와 있었다. 엽산 수용체 자가항체가 있는 아이들에게서 뇌척수액의 엽산 수치가 낮고, 페르본이 그 수용체를 우회하여 뇌로 직접 엽산을 전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해외 저널에 발표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이 약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약이었고, 나는 하나하나 논문을 읽고 이 아이에게 필요한 약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처방을 결정했다.
아이 체중에 맞게 용량을 계산했다. 이미 여러 영양제를 복용 중인 아이에게 또 하나를 얹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매일 아침 작은 그릇에 이것저것을 담아 내미는 일이 이미 실랑이를 동반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는 낯선 맛에 입을 딱 다물어버리곤 했다. 며칠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방법을 찾았다.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조금씩.
그날 밤, 결과지를 파일에 끼워 넣으며 생각했다. 치료는 증상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아이 몸 안에서 무엇이 막혀 있는지, 어디서 에너지가 새는지를 하나씩 확인하고, 그 구멍을 메워가는 것. 페르본 하나가 세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뇌에 필요한 엽산을 제때 공급해주는 것 — 그것이 기초였다. 기초부터 다시. 그 원칙 아래 2021년 가을이 천천히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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