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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익명· 2026년 6월 9일

15화. 약 상자와 연말

15화. 약 상자와 연말

15화. 약 상자와 연말

12월이 되자 부엌 한켠의 약 상자가 두 칸이 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플라스틱 통 하나였다. 오메가3, 비타민D. 그랬던 것이 지금은 — 마그네슘, 비타민B군, 아연, 유산균, 해독을 보조하는 여러 영양제들, 그리고 페르본까지. 이름을 전부 쓰려면 손가락이 모자랐다. 상자 뚜껑을 열 때마다 나는 잠깐 멈췄다. 이것들이 이 아이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꺼번에 쌓인 것들을 마주하면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자랑스럽지도, 슬프지도 않은 — 그냥 무겁고 진지한 감정이었다.

매일 아침 아이 앞에 작은 그릇을 내미는 일은 전쟁이었다. 아이는 낯선 약 냄새만 맡아도 고개를 돌렸다. 입에 넣어주면 뱉었다. 억지로 먹이려 들면 울었다. 입을 꼭 다물고 도리질을 쳤다. 결국 내가 아이를 붙들고, 아내가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넣는 식이었다. 뱉으면 다시, 울면 달래서 다시. 열 가지 약 중에 서너 개만 간신히 들어가면 성공적인 아침이었다. 때로는 지쳤다. 약 상자를 열 때마다 문득 드는 생각 —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이게 정말 아이를 위한 일인가. 나는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매일 아침 다시 약 상자를 열었다.

12월은 FMT 2차, 3차, 그리고 마지막 4차까지 — 대변치료가 집중된 달이기도 했다. 12월 15일, 22일, 29일. 일주일 간격으로 세 번. 주삿바늘도, 해독주사도, 면역주사도 함께였다. 아이는 매주 병원에 올 때마다 울었다. 붙들려야 했다. 말이 없었기 때문에, 싫다는 표현은 온몸으로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했다.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멈추면 더 무서울 것 같아서였다.

2021년이 저물었다. 올해 초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 검사지의 숫자들이 조금씩 달라졌고, 아이의 수면이 조금 나아졌다. 변이 덜 묽어졌다. 짜증의 빈도가 줄었다. 그러나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어떤 단어도, 어떤 소리도 의미를 담아 내게 건네지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1년 전의 아이와 지금의 아이는 달랐다. 그 차이를 숫자로 표현할 수 없어도, 매일 아이를 붙들고 약을 먹이고 병원에 데려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몸이 조금씩 리듬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 조용한 신호들을 나는 치료의 증거로 받아들였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연말에 약 상자를 정리했다.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순서를 다시 배열하고, 내년 것을 주문했다. 창밖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이는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눈을 바라보았다. 한참 그러다가 손을 유리창에 올렸다. 눈을 향해. 말은 없었다. 하지만 그 손이 가리키는 방향이 있었다. 하얀 세상, 떨어지는 눈송이들. 말이 아닌 손으로, 아이는 오늘 처음으로 내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 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새해에는 더 많은 것이 가능해지기를. 그러나 그 바람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냥 약 상자 뚜껑을 닫고, 아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2021년이 저물고 있었다.

⚠️ 면책조항 (Disclaimer): 본 웹툰은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 형식의 콘텐츠입니다. 특정 치료법의 효과를 보증하지 않으며, 모든 의료적 판단은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의 상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개별 환자의 치료 결과는 다양할 수 있으며, 본 콘텐츠의 사례가 일반적인 치료 결과를 대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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