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봄의 검사

21화. 봄의 검사
4월의 진료실 창문으로 목련 꽃잎이 후두둑 지고 있었다. 봄비가 내리기 직전, 습하고 짙은 냄새가 열린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아이의 왼쪽 팔꿈치 안쪽을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눌러보았다. 혈관이 가느다랗게 드러났다. 의사로서 이 동작은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내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FMT 4차가 완료된 지 이 주였다. 네 번의 시술 동안 아이는 시술대에 눕혀질 때마다 울었다. 울음의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말이 없는 아이였다. 만 두 살 반. 아직 단어 하나 나오지 않았다. 아프다는 개념조차 언어로 연결되지 않는 시기. 나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울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오늘은 혈액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날이었다. FMT 이후 장내 미생물 환경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면역 지표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수치로 확인하는 체크포인트. 나는 채혈을 직접 했다. 다른 선생님에게 맡길 수도 있었지만, 이 팔에 바늘을 꽂는 행위만큼은 내가 해야 한다고 느꼈다. 설명할 수 없는 고집이었다.
알코올 솜이 피부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 아이의 팔이 살짝 굳었다. 아이는 말없이 시선을 벽 모서리 어딘가로 옮겼다. 바늘이 들어갔다. 아이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다만 입술을 꾹 다물고 몸을 조금 뒤로 젖혔다. 아프다는 것을 말 대신 몸으로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만 두 살 반, 아직 말이 없는 아이의 유일한 언어.
혈관에서 피가 주사기 안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 붉은 액체 안에 지난 몇 달의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FMT 시술실의 냄새, 해독 주사 후 아이가 토해냈던 것들, 새벽에 혼자 읽은 논문들, 아내와 식탁에서 나눈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의 대화들. 이 모든 것이 지금 이 관에 담기고 있었다.
검체를 검사실로 넘기고, 기다렸다. 의사는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대개 다음 환자를 본다. 나도 그렇게 했다. 오전 진료를 마치고 점심을 건너뛰다시피 하며 오후 진료 사이 틈에 결과지를 열었다. 숫자들이 화면에 펼쳐졌다.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처음엔 그것이 실망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수치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염증 마커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소폭 내려와 있었다. 면역 세포의 비율이 조금 더 균형 잡혀 있었다. 간수치는 정상 범위 안에 안정적으로 들어와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 결과지를 보여준다면 "큰 변화가 없네요"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조용한 변화를 신뢰했다. 극적인 수치 반전은 오히려 내게 의심의 신호였다. 몸이 진짜로 바뀔 때는 이렇게, 소음 없이 움직인다.
파일을 덮으면서 나는 다음을 생각했다. 줄기세포. 아이 자신의 혈액에서 얻은 세포를 다시 아이의 몸에 넣는 치료. 근거는 제한적이었지만, 의사로서 나는 그 불확실성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봄의 결과지를 손에 쥐고 창밖의 꽃잎이 지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아버지로서 결심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경유지다. FMT가 장의 토대를 닦았다면, 다음은 더 높은 곳을 향해야 했다. 아직 말 못 하는 아이의 몸이 보내는 아주 작은 신호들. 나는 그것을 믿기로 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