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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익명· 2026년 6월 9일

29화. 가을, 그리고 숫자

29화. 가을, 그리고 숫자

29화. 가을, 그리고 숫자

결과지를 펼치기 전에 잠깐 멈췄다.

의사로 살면서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일은 루틴이다. 수치를 보고, 범위를 확인하고, 의미를 해석하는 것. 몸에 배어 있는 일이다. 그런데 8월 24일, 아이의 CBC 결과지를 손에 쥐고 나는 그 익숙한 동작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내 아이의 숫자는 달랐다. 의사의 눈이 아니라 아빠의 손이 먼저 결과지를 받아들고 있었다.

펼쳤다.

수치들을 훑었다. 하나씩. 처음에는 빠르게, 그다음에는 천천히. 이전 결과지들을 나란히 놓고 시계열로 비교했다. 이 수치는 올랐다. 저 항목은 내렸다가 다시 올라오는 중이었다. 완만한 개선이었다. 극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방향이 있었다.

파도 같다고 생각했다. 오르내리지만 수면 자체가 높아지는 것. 치료를 시작하던 시점과 지금을 비교하면, 파도의 골짜기조차 예전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의사로서 읽은 것이 아니었다. 오래 기다려온 사람이 마침내 방향을 확인하는 눈으로 읽은 것이었다.

숫자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수치가 개선되어도 아이가 내 이름을 부르는 날이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어가 트이는 것, 눈빛이 달라지는 것, 관계가 생기는 것 — 그런 것들은 어떤 검사지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오늘 이 숫자들이 주는 안도감은 달랐다. 나는 그 안도감을 나쁘게 보지 않기로 했다. 오랫동안 불확실함 속에서 버텨온 사람에게 수치가 주는 신호는 작은 지지대가 된다.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것.

저녁에 아내에게 결과지를 보여줬다. 아내는 수치의 의미를 다 알지 못했다. 나는 설명하는 대신 그냥 말했다.

"좋아지고 있어."

지금까지 이 말을 여러 번 하려고 했다. 하지만 항상 끝에 단서가 붙었다. '아마도', '이 수치만 보면', '아직 모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흔들림 없이 말했다.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 나는 내가 정말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확신이 먼저 온 것이 아니었다. 말이 나오면서 확신이 확인됐다.

아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였다. 나도 더 말하지 않았다.

숫자 하나가 우리 사이에 조용히 놓인 밤이었다.

⚠️ 면책조항 (Disclaimer): 본 웹툰은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 형식의 콘텐츠입니다. 특정 치료법의 효과를 보증하지 않으며, 모든 의료적 판단은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의 상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개별 환자의 치료 결과는 다양할 수 있으며, 본 콘텐츠의 사례가 일반적인 치료 결과를 대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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